2000년부터 현재까지 수여된 밑빠진독상 목록과 보고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월간 좋은예산 2011년 4&5월호]

 

미신 때문에 낭비된 예산

 

 

최승우(좋은예산센터 상임활동가)

 

 

2005년 장진 감독의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엘리베이터에 4층이 모두 ‘F’로 표시된 것과 관련한 수다가 나온다. ‘4(사)’라는 숫자가 한자어 ‘죽을 사(死)’와 음이 똑같다는 이유로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4’를 꺼려하기 때문에 대신 ‘F'로 표기하는 것인데, 우리에겐 너무 일상적인 모습이라 별달리 의문도 가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는 분명 일종의 ‘미신’이나 ‘속설’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런 미신으로 인해 실제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 최근 광주지법에서 “공동주택에서 주민등록상 동호수가 등기부와 다르게 기재된 경우 그 주민등록은 공시방법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례를 적용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억울한 측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 판결로 세 가구가 각각 보증금 1300만 원, 2100만 원, 1400만 원을 손해 보게 되었다. 이 사건이 바로 앞의 미신으로 인한 피해 사례이다. 2008년 9월 박모씨는 보증금 1300만 원에 임대차계약을 맺고 광주시 월산동 A빌라 4층에 입주했는데, 계약서에는 현관문에 적힌 대로 502호로 기재했지만 등기부상에는 402호로 되어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박씨는 계약서에 적힌 대로 502호로 주민등록 전입신고도 마쳤다. 그런데 이후 건물주가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박씨는 경매절차가 진행되자 임차인으로서 권리를 주장했지만, 등기부와 주민등록상 호수가 다르다는 이유로 낙찰금 배당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똑같은 이유로 등기부상 403호와 405호도 낙찰금 배당에서 제외되었다. 피해자들은 “현관문과 우편함에 502, 503, 505호로 적혀 있어 이대로 전입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고, 호수에 4라는 숫자가 들어가면 좋지 않다는 동양적 미신 때문에 ‘4’가 들어간 호수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가 보다 했다.”고 호소했지만, 결국 기각되고 만 것이다. 미신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큰 피해를 입은 안타까운 사연이다.

그런데 이런 사적인 문제뿐 아니라 미신과 속설 때문에 발생하는 예산낭비도 우리 주변에서 종종 목격된다. 선뜻 믿기 힘들지만, 막상 찾아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여러 사례를 찾아낼 수 있다.

 

 

- 수맥이 무서운 지방자치단체장

 

 

올해 1월, 경남 거제시장 집무실 보수공사 중에 바닥 카펫 아래에 동판이 깔려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0.01mm 두께의 이 동판은 118㎡ 규모의 시장 집무실 일부분에 깔려 있었다. 이 동판은 2003년 보궐선거로 당선된 김한겸 전 시장이 한 역술인의 “시장실 아래로 수맥이 흐른다. 그냥 두면 화를 당한다.”는 말을 듣고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전 시장은 자신의 전임인 양정식 시장이 칠천도 연륙교 건설공사와 관련해 시공사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자진사퇴하는 바람에 치러진 보궐선거로 당선되었는데, 전임 시장의 ‘불운’도 시장실 밑의 수맥 때문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이 동판 설치는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어 공사비용의 출처를 비롯해 공사내역과 회계처리 등 일체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수맥 차단을 위한 동판 설치가 부실시공이었는지 김한겸 전 시장도 결국 비리에 연루되어 시장직을 물러나고 말았다. 나쁜 기운을 막지 못한 이 동판은 권민호 현 거제시장의 지시로 철거되는데, 철거된 동판은 36만 원에 고물상에 팔려 모두 거제시 세외수입으로 처리되었다.

2010년 10월 전남 화순군은 화순읍 훈리 군청 인근의 기존 관사를 두고, 임대보증금 7000만 원을 내고 아파트 2채를 새로 임대했다. 게다가 추가로 26평짜리 아파트 두 채를 오갈 수 있도록 하는 리모델링 공사비 2000만 원과 2000만 원어치의 각종 비품도 군비로 마련하는 등 총 1억1000만 원을 들여 새롭게 관사를 조성했다. 관사 이전 당시 “예전 관사에 수맥이 흘러 군수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관사를 이전한 것이다.”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관사 이전으로 군수님 건강은 좋아졌는지 모르지만, 더 큰 문제는 전완준 전 군수가 2011년 2월 24일 공직선거법 위반 확정판결로 군수직을 상실한 뒤에도 관사를 비우지 않고 그대로 살면서 발생했다. 군의 재산을 무단점유하고 있는 전 군수에 대해 공유재산 관련규정에 따라 시정조치를 취해야 할 화순군은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임근기 군수 권한대행은 “전임 군수가 군수직을 상실했다고 그 다음날 길거리로 나앉아야 되겠느냐. 전 군수가 그 집에 그냥 살고 싶다고 하는데, 매몰차게 이사하라는 말을 하기가 곤란하다.”며 전 군수 감싸기에 급급했다. 어쨌든 화순군의 ‘따뜻한 온정’ 때문에 4․27 재보선을 통해 당선되는 신임 군수는 새 관사를 이용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 풍수지리는 따져도 예산은 안 따진다

 

 

현 국회가 들어선 여의도 1번지는 과거 조선시대 양과 말을 키우던 곳으로 ‘양말산’이라고 불렸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는 궁녀들의 화장터로 이용된 곳이다. 풍수지리에서 보면 과거 궁녀들의 화장터는 국회 건물을 짓기에 부적합한 장소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국회에서 갈등과 정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궁녀들의 무덤터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는, 술안주거리로 딱 좋은 얘기가 떠도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술자리 속설에 따라 정말로 예산이 집행됐다. 김태랑 전 국회 사무총장이 풍수지리학자의 조언을 받아 음기(陰氣)를 다스린다며 2008년 4월 국회 개원 60주년 기념비로 높이 7m, 무게 65톤의 남근(男根) 형상의 거석을 2억1000만 원을 들여 세운 것이다.

거석 하나 세워서 정말 정치권의 소모적인 정쟁이 없어지고, 힘을 합쳐 국민을 위해 노력하는 국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과학적 근거 없는 미신이나 속설에 의존해서 그런 큰 바람을 이루어내긴 어려운 일이다. 여야 정치인들의 정쟁을 끊어주길 바라면서 세운 거석은 정권이 바뀌자 오히려 새로운 정쟁의 한 요인이 되어 ‘흉물’ 취급을 받게 된다. 기독교단체들이 이 거석을 근거 없는 풍수지리에 따른 우상숭배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철거를 주장하면서, 언론에도 국회에 ‘남근석’이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국회의 이미지 실추를 염려한 박계동 사무총장이 2009년 거석의 철거를 결정하고, 국회의사당과 멀리 떨어지고 인적이 드문 헌정기념관 뒤 공터로 옮긴 것이다. 여야 정치인들의 정쟁을 막기 위한 거석은 언젠가 그 영검함을 보여준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설치 후 다시 철거와 재설치를 반복하면서 예산만 낭비하는 영검함만을 보여주고 있다.

2008년 5월 국세청은 14층 국세청장 집무실을 12층으로 이전하면서 유리벽 설치공사를 했다. 유리벽으로 ‘투명세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자는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소요예산은 2008년 3월 21일 국세청이 조달청에 요청한 입찰공고에 따르면, 당초 사무실 재배치 건축공사에 6억4099만 원, 전기공사에 3억1686만 원의 예산을 책정하여 공개 경쟁입찰 과정에서 최종 낙찰가로 건축공사 4억5800만 원, 전기공사 2억5686만 원, 총 7억1486만 원을 들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14층 집무실을 12층으로 옮기면서 여러 가지 잡음이 생겨났다. 국세청은 ‘투명세정’ 전파 의도에 따른 집무실 이동이라고 설명했지만, 언론에서는 풍수지리에 의한 이전설을 제기했다.

이중성 전 국세청장이 불명예 퇴진하고, 전군표 국세청장마저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8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조사를 받은 상황이었던 2007년, 풍수지리에 해박한 중국 첸관린 국세청 차장이 우리나라 국세청을 방문해서 한 말이 화근이었다고 한다. 첸 차장은 “국세청장 집무실이 14층에 위치해 길운이 없다.”는 말을 남겼는데, 전군표 전 청장이 때마침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후 풍수지리에 밝은 전문가가 국세청장 집무실을 둘러보고 조언을 하여 집무실을 12층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이전 14층 집무실은 안에서 풍경을 볼 수 없는 구조로, 책상은 서쪽을 향해 있어 청와대 쪽에서 바라보는 방향과 90도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는데, 12층 새 집무실은 동쪽으로 창문이 자리잡고 있으며, 책상도 청와대와 같은 남쪽 방향을 바라보게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국세청은 “기존 14층 집무실은 건물 구조상 유리벽 설치가 상당히 난해한 측면이 많아 12층으로 이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국세청 한 직원은 “12층 이전과 관련해 중국 국세청 차장의 언급과 풍수지리가의 조언이 있었다는 것은 국세청 내 ‘2급 비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2층 집무실의 위치가 좋긴 좋았는지, 참여정부에서 입명되었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재신임을 받게 된다. 여기까지는 풍수지리가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투명세정’과 거리가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의혹 어린 행보들은 유리벽이 투명세정을 지켜주는 것도 아니며, 풍수지리가 국세청장의 지위를 지켜주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 엉뚱한 집 대통령 생가로 지정해 ‘인공 명당’ 만들기도

 

 

지자체가 나서서 ‘인공 명당’을 만들어주는 일도 있다. 더구나 그 명당이 가짜라는 의혹이 짙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09년 포항시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덕실마을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대통령이 거주한 적도 없는 대통령 친인척의 집을 ‘대통령 생가’로 홍보하다 논란을 일으켰다. 이명박 대통령의 진짜 생가는 덕성리 538번지로, 대통령의 선친은 물론 11대조부터 300년간 대대로 살아온 곳이며, 대통령도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포항시가 대통령 생가로 홍보하고 있는 곳은 덕성리 538번지가 아니라 덕성리 561번지로 이곳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거주한 적도 없다고 한다. 2009년 당시 덕성리 561번지는 대통령의 5촌 조카인 이모씨가 소유주이고, 4촌 형수인 류모씨가 거주하고 있었다.


포항시는 2007년 말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예산을 들여서 덕실마을 인근에 16개 도로 안내간판을 설치하고 이명박 후보의 사진과 그림이 새겨진 엽서와 캐릭터를 4만 매 이상 제작해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여 빈축을 산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대통령이 산 적도 없는 집을 생가로 홍보하고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LED 전광판, 포토존, 보안설비, 인도, 관광안내소 및 안내판 등을 설치하기 위해 3억 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했다. 여기까지는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일하는 담당공무원의 실수 내지 무능력 문제로만 보인다. 그런데 좀 더 깊이 들어가 이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관해 제기되는 의혹을 살펴보면, 이 역시 풍수지리와 무관하지 않은 면이 있음을 알게 된다. 대통령 생가를 잘못 지정한 것이 실수가 아니라 대통령 친인척이 현재 소유․거주하고 있는 집에 풍수지리 프리미엄을 제공하기 위한 의도적인 일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역대 대통령 생가와 주변지역은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명당’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엄청난 땅값 프리미엄을 얻게 되며 관광지로 개발될 경우 즉각적 이익도 얻을 수 있는데, 이러한 이득을 특정인에게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집을 대통령 생가로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 하늘을 찌르는 형상은 좋지 않다?

 

 

미신을 주민 민원으로 포장하여 합리화하기도 한다. 2011년 1월 11일 OBS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 양주시가 양주별산대놀이 공연장에 있는 피뢰침을 교체하였는데, 피뢰침 교체의 이유가 ‘하늘을 찌르는 형상은 양주시에도 좋지 않고 여러 가지로 안 좋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피뢰침의 안정성 강화나 노후화에 따른 기능 저하 등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하늘을 찌르는 뾰족한 모양이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둥근 모양의 피뢰침으로 바꾸기 위해 개당 180만 원씩, 모두 10개의 피뢰침 교체에 총 18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한 것이다. 양주시 입장에서는 하늘을 찌르는 피뢰침의 형상에 대한 주민의 민원 때문에 교체를 결정하였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타당한 이유인지는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만약 또 다른 양주시의 공공시설물에 대해 어떤 주민이 주관적 기준으로 형상이 부적절하니 교체해야 한다는 민원을 제기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마다 공공시설물을 교체할 건가? 하늘을 찌르는 형상이 안 좋다는 생각은 극히 주관적인 견해이거나 세간에 전해 내려오는 속설에 불과하다. 이런 속설을 이유로 쓰지 않아도 될 예산집행을 결정한 양주시의 판단은 안이하다 못해 어처구니없다 할 만하다.

미신, 속설, 유사과학 등으로 취급되는 수맥과 풍수지리는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인정되는 합리적 논리로 증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현재 인정되고 있는 과학적 논리가 절대적으로 완벽하다고 단정할 순 없기 때문에 언젠가는 미신, 속설, 유사과학 등으로 취급되었던 사건이나 이야기 등도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미신과 속설 등에 근거하여 사업을 결정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과 동떨어진 행위임에 분명하다. 때문에 명백하게 예산 낭비로 보아야 할 타당성이 더 크다고 하겠으며, 언젠가 현재 미신, 속설, 유사과학 등으로 간주되는 믿음과 논리가 당당하게 우리 사회의 과학으로 인식되더라도 지금 그런 행동을 선견지명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거제시청 동판이 비밀리에 깔렸다는 것 자체가 행위자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미신, 속설, 유사과학 등에 근거한 예산낭비는 남몰래 숨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민과 언론의 감시와 견제가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막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미신과 속설 등에 근거한 예산낭비 사례들은 독단적인 의사결정과 불투명한 집행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외부의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한 개인이나 극소수에 의한 독단적 의사결정을 견제한다면 예방할 수 있는 일이다. 사업을 결정하고 예산을 배정할 때 명확한 판단근거와 성과목표를 제시하도록 하고, 그러한 근거와 목표가 합리적인지 여부를 내․외부에서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견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한 개인이 합리적 논의나 정보공개 없이 마음대로 사업을 결정할 수 없도록 하면 어이없는 미신이나 속설을 이유로 사업을 하고 예산을 배정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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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3월호] 흥청망청 재외공관, 나라망신도 다반사 [2] 좋은예산 2011-06-23 2596
[2011년 5월호] 미신 때문에 낭비된 예산 [3] 좋은예산 2011-07-16 1942
[2011년 10월호] 군납비리, 지겨운 재방송 [4] 좋은예산 2011-10-17 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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